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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마리아, 수태고지의 마리아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어떤 뜻인지 알 것이다. 마리아를 찬양하라.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밴다. 신이 아닌 그 누군가가 본다면 그녀를 부정한 여자로 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주변에 떠다니던 천사들과 머리로 내리쬐던 환한 빛은 그녀를 성처녀로 만들었다. 성당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색색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마치 그 때를 다시 보는 것같은 환상을 안겨 준다. 수많은 서양의 음악가들이 마리아를 찬양했다. 성당 곳곳으로 울려퍼지는 음색의 구구절절함도 그렇지만, 연주하는 순간마다 느껴지는 그 포근하고 따스한 어머니의 온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파리넬리의 '울게 하소서'만큼 파토스가 강한 것도 아니고, 트릴과 꾸밈음으로 복잡한 무늬의 레이스처럼 화려한 것도 아니지만 단아하고도 우아하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일으켜 세워주고, 아파서 울부짖을 때마다 말없이 껴안아 주는 어머니. 우리를 낳았고, 어느 누구보다 가깝게 이어져 자식이 아플 때마다 차라리 같이 아파하고 싶어하는 어머니. 힘든 순간마다, 차마 말로 위로를 다할 수 없을 때 이 아베 마리아들, 성모를 위한 곡들이라면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게끔 도와주지 않을까.
구노의 '아베 마리아'는 수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아베 마리아 곡이다.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은 음색으로 '숭고'를 표현하고 있다. 모차르트의 '구도자를 위한 저녁기도'는 이제 모든 일상이 마무리되고 휴식만이 남았을 때, 사나운 늑대도 겁에 질린 양들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면서 조용히 잠자리에 들게끔 하는, 평화로운 음색을 지니고 있다. 교회음악의 대가라 할 수 있는 바흐의 쳄발로 협주곡 5번은 낭랑하면서도 단순한 음으로, 수없이 많은 감정의 단층을 만들어 내며 불가에 앉아 어머니에게 그날 있었던 힘들었던 일들을 도란도란 말하고, 위로받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끝없는 안식. 슈베르트와 스트라빈스키의 아베 마리아는 조금 더 깊고, 고요한 물가 위에서의 저공비행만큼이나 평화롭게 듣는 이들을 감싼다. |